산남의진에서 만주까지, 독립의 뜻을 이어간 손진구 선생

작성자 학예연구부 작성일 2026.09.04 17:45 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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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에서 만주까지, 독립의 뜻을 이어간 손진구 선생


-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경북 9월의 독립운동가로 영천 출신 손진구 선생 선정 -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대표이사 한희원)은 산남의진에서 의병을 양성하고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펼친 영천 출신 손진구(孫晋球, 1866~1928) 선생을 경북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66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처단과 조약의 폐기를 촉구하는 상소를 올리며 국권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6년 경북 영천을 중심으로 산남의진이 조직되자 여기에 참여해 훈련장과 총수를 맡았다. 선생은 의병들을 훈련시키는 한편, 각지에 사람을 보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전력 강화에 힘썼다.  

산남의진은 을사늑약에 항거해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 남동부 일대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항일 의병부대였다. 정환직·정용기 부자를 중심으로 영천·청송·영덕·경주 등지를 오가며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선생 또한 이때 유격장으로 의병 100여 명을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중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풀려났지만 선생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1913년에는 독립의군부에 참여해 참장으로 활동하며 국권회복을 위한 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1919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참여했다가 다시 체포돼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계속하는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한희원 대표이사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한결같은 뜻으로 평생을 바친 선생의 삶과 정신이 도민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다양한 선양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