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독립운동기념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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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독립운동기념관 개관
- 한국독립운동 성지로 21세기를 열어갈 국민정신교육장으로 활용 -
안동인의 독립정신을 전시·교육하기 위한 안동독립기념관이 8월 10일 개관을 하였다. 그동안 안동지역은 학계의 노력으로 ‘한국독립운동의 성지’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의 일곱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안동은 독립운동의 발상지이다. 안동을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894년 갑오의병이 처음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둘째, 의병항쟁 이후에 전개된 안동인들의 각종 항일투쟁에는 혁신유림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성리학적 전통이 강한 안동에서 서구 근대사상이 학습되고, 이전의 의병항쟁에서 계몽운동으로 구국의 방략을 바꾸어 나가는 시기는 다른 지역보다 늦었다. 그러나 일단 선각자들에 의해 개화사상이 수용되면서부터는 다른 지역의 계몽운동가들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말 일제하에 다수의 계몽운동가들이 타협적인 노선을 선택하였지만, 안동지역의 혁신유림들은 일제하에 더욱 적극적인 항일운동가로 투신하였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안동지역 유가적 전통의 긍정적인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안동지역이 갖는 소중한 가치이다.
셋째,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다. 대개 한 개의 시?군 당 30여명을 배출하였는데, 안동의 경우는 약 290명 정도에 이른다. 이것은 그 수치로 보면 다른 시?군 단위의 통계와 비교할 정도가 아니라, 도 단위의 통계와 비교해야 할 만큼 대단히 많은 수치이다.
넷째, 안동인들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순국 자결인사를 배출할 만큼 절개와 의리를 지니고 있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일제침략에 항거하여 전국적으로 약 6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가운데 10명이 안동인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국가에 대한 충성을 몸소 실천하였고, 이들의 순국투쟁은 이 후 항일투쟁의 정신적 좌표가 되었다.
다섯째, 1920년대와 30년대 사회주의운동에도 어김없이 안동인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특히 이들은 대개 유산자 계층이요, 지배계층 출신이었지만,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였다.
여섯째, 지역과 시기를 불문하고 각종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바로 안동인들이다. 사상적인 갈등, 지역적인 갈등, 그리고 나이를 따지지 않고 오직 독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그 어느 분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항일투쟁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하였고, 뛰어난 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곱째, 안동인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지식인이자 지배층이 역사적인 책무를 지고 나간 전형적인 모범에 속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널리 이야기 되고 있는 Noblesse Oblige를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문화공동체가 바로 안동문화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인 “한국근대 최초의 의병인 갑오(1894. 7월)의병이 일어난 안동” “전국최다의 독립운동유공자·자정순국자를 배출한 안동” “한국독립운동사의 핵심인물을 배출한 안동” 이라는 역사성은 안동에 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했다. 이러한 당위성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노력과 시민들의 5년간의 노력으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안동에 구국기념관을 설립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9년 9월부터이다. 그 후 2002년까지 학술적 뒷받침과 시민들의 공감대가 성숙하면서 5,500명의 안동시민이 서명운동에 동참하였다. 이는 기념관 건립의 기폭제가 되었다. 추진과정에서 기념관의 명칭이 안동독립운동기념관으로 구체화되었고, 2002년 12월 이를 추진할 “안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2003년 2월 국가보훈처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정식 승인을 받고, 4월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2004년 2월 사업회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건립준비를 시작하였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의 내앞마을은 1907년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의 산실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집단만주망명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김대락·김동삼과 같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기념관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여의 준비 끝에 국비 41억, 도비 17억 시비 35억, 총 93억을 들여, 부지 25,424㎡에 연면적 2,842㎡ 지하/지상 1층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주요시설로는 전시실, 연수교육시설, 자료실과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전시시설을 통한 연수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최대의 장점을 갖춘 것이 기념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실은 약 963㎡ 규모로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제 1전시실은 안동인의 국내 독립활동을 제 2전시실은 만주로 망명하여 안동인들이 펼친 국외활동을 담고 있다. 제 3전시실은 영상추모관으로 안동의 독립운동가 1000인을 영상으로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을미의병기의 안동의소파록(安東義疏爬錄), 동산 류인식의 대동사(大東史), 조선노동공제회안동지회 임명장, 안동조선물산장려회취지서 등 안동인들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특색있는 유물 8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1926년 6.10만세 운동을 주도한 권오설이 소장하고 있던 “신간회국내외정세보고서”는 1927년 민족유일당운동과 관련한 자료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귀중한 자료이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51년간 쉼 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안동인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한 교육장이다. 이는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고 안동만이 가진 가치이자 특수성이다. 또한 안동의 독립운동은 유교문화의 학문적?정신적 맥락에서 전개되었고, 대다수 지도자들은 퇴계학맥을 잇는 유교적 지식인이었다. 이는 보수적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혁신적 변화를 통해 나라를 잃은 힘든 시대에 책임있는 행동을 선도했다는 측면에서 “유교의 긍정적 부분”을 인식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기념관은 독립운동유적해설사 양성교육, 청소년 보훈캠프, 역사교사 및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한 만주유적지 탐방 등의 교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기념관은 전시실운영과 한국근대사?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한 연수교육사업, 독립운동사 발간, 자료수집 및 독립운동가 발굴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지금까지 기념관건립을 위해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관계기관과 시민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기념관의 건립은 1999년 9월 발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의 노력과 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예산 확보와 사업의 추진과정, 운영준비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기에 기념관의 건립은 또 하나의 대동과 협력의 결실이다. 안동의 독립운동 자원은 안동의 보고일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정신적 유산이다. 우리 기념관은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러한 유산을 잘 보전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교육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담당부서 및 담당자:학예연구부 한준호/이메일:pantagom@hanmail.net/연락처:054-823-1555(FAX.054-823-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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