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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병화

작성일 2014.12.16 조회 599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병화
한자
李炳華
생존기간
1906.2.26~1952.6.8
출생지
법흥동
활동분야
만주방면
훈격
독립장(90)

본문

본관은 고성固城. 이명은 이대용李大用·이계오李桂五·이병화李秉華·이탁李拓·이경천李慶天. 자는 경천敬天. 호는 소파小坡.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흥동法興洞 20번지(현 법흥동). 이병화는 1911년 조부인 이상룡李相龍을 따라 부친 이준형李濬衡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1년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다니며 재만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이광국李光國·김산金山 등과 남만청년총동맹南滿靑年總同盟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이상룡과 김동삼金東三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무장투쟁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담하여 통의부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그는 1924년 평안북도 청성진의 일본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을 사살한 후 수배되었다. 1927년 5월 길림성吉林省 반석현磐石縣에 기반을 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에 가입하여 사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 남만 제1구 도간부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그 해 12월에 열린 남만청년총동맹 대회에서는 선전부 상무로 선출되었다. 이후 1928년 봄 반석현에서 결성된 고려공산청년회 남만1구 선전부 간부로 활동하였고, 1928년 5월에 결성된 재중국한인청년동맹在中國韓人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1930년에는 중공당中共黨 이립삼노선李立三路線에 따라 요동지역의 농민봉기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1934년 5월 청성진 경찰주재소의 습격과 관련하여 신의주경찰서에 체포되어, 같은 해 6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묘는 대전현충원에 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

 

• 참고자료

  『소파유고』

  「국외용의조선인명부」

  『독립운동사자료집』 14집

  《동아일보》1934.6.27

  《조선일보》1934.5.8, 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