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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지호

작성일 2014.12.16 조회 484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지호
한자
李墀鎬
생존기간
1901.3.21~1957.5.3
출생지
도산면 단천리
활동분야
국내항일
훈격
애족장(90)

본문

본관은 진성眞城. 이명은 이지호李之乎. 출신지는 도산면陶山面 단천리丹川里. 이지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활동으로 그는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1907년에 설립된 대동강습소大同講習所(동후면 도곡리, 현 와룡면 도곡리)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한편, 1925년 8월 안동청년연맹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그 해 10월 도산구락부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여름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안동야체이카에 배속되었고, 1927년 가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조공 안동야체이카에 배속되었다. 1928년 봄 조공 안동야체이카 및 고려공산청년회 안동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으며, 6월 조선공산당 안동군 집행위원으로 선출되고, 야체이카회를 열어 당원의 교양, 야체이카 조직·선전 ·재정·비밀유지에 관해 협의했다. 이 활동으로 인해 그 해 9월 경기도 경찰부에 잠시 검거되었다가 풀려났다. 1929년 8월 안동청년동맹 제2차 정기대회 임시의장·신간회 안동지회 대표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경북공산당사건에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1930년 12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57년 5월 3일 사망했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판결문」(1930.12.27, 대구지방법원)

  『교남교육회잡지(회원명부)』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동아일보》 193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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