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ION
소장유물김후병이 작성한 간찰
- 유물명
- 김후병이 작성한 간찰(金厚秉 簡札)
- 유형
- 지류
- 언어
- 한문
- 재원
- 81.4×17.7
- 시대
- 조선
- 생산자 및 생산처
- 김후병
- 생산년도
- 1892
본문
○○년 1월 9일(양), 창암(蒼庵) 김후병(金厚秉, 1874~1954)이 새해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상대에게 벌어진 몇 가지 일에 관해 조언을 하기 위해 자신의 종제(從弟)에게 보낸 편지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해가 된 지 9일이 지났다고 하면서, 상대 형제 및 집안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면 다시 취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다소의 이야기들은 우선 놔두겠지만, 다만 이곳에 돌아올 계획은 늦으면 낭패 볼 일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반드시 여러 집안 형·조카들과 충분히 상의해서 혼사를 정하라고 당부 하고 있다. 혼처도 만일 예천의 장씨 집안이라면 잘 상의하는 것에 달렸으니 보름 전에 귀착되면 우리 집에 잘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 편지의 발급 월일을 적었는데, 연도는 따로 없고 “新正(신정) 初九(초구)”라고만 되어 있어서 양력에 의거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발급자 자신은 “從兄(종형) 仁孟(인맹)”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상대에 대해 자신을 ‘종형(從兄)’이라고 한 것으로 보면 수취인은 ‘종제[사촌아우]’로 볼 수 있다. ‘인맹(仁孟)’은 김후병의 자(字)이다. 본문에 언급한 “예천의 장씨[醴張]”는 예천에 세거한 인동장씨(仁同張氏) 집안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기증 당시부터 액자에 표구되어 있었다.
발급자 김후병은 본관은 의성, 자는 인맹, 호는 창암이다. 1907년 류인식(柳寅植) · 하중환(河中煥) · 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고 교사로 재직하였다. 1908년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1915년 광복회(光復會), 1920년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 구국단(救國團) 등에서 활동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임시의정원 의원후보자를 추천하는 등의 활동도 했다. 1920년 12월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고, 풀려난 후 1923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에 참여하는 등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고, 신간회 안동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정부는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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