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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유물

1900년 류필영 간찰

작성일 2024.10.18 조회 5 작성자 학예연구부
유물명
1900년 류필영 간찰
유형
서간류
언어
한문
재원
97.0×22.0
시대
조선
생산자 및 생산처
류필영
생산년도
1910

본문

1900년 1월 10일 밤, 서파(西坡) 류필영(柳必永, 1841~1924)이 집 떠나 서울에서 일을 보고 있는 아들 류인식(柳寅植)을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보낸 장문의 편지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집을 떠나 지내는 상대의 소식이 궁금해 답답해하던 차에, 연이어 두 통의 편지를 받아 안부를 확인했다고 서두를 떼었다. 자신은 돌림병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어서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복용하여 병에 대비하고 있으니, 도회지에 있는 상대도 그 약을 지어 복용하라고 하라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는 방법이요, 어버이를 사랑하는 도리를 알고 있다면 몸가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천만번 신중히 하여 행여 아비에게 근심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발급자 류필영은 본관은 전주, 자는 경운(景運), 호는 서파이다.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고, 1919년 파리장서의거 때 서명자(4位)로서 활약하였다. ‘남곽북류(南郭北柳, 영남의 거유로 남쪽은 곽종석, 북쪽은 류필영이라는 의미)’로 불리며 당시 향촌사회 내에서 중망을 받던 안동의 대표적인 유림이다. 파리장서의거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류인식이 성균관 유학길에 올랐던 해는 1903년이다. 따라서 이 편지가 발급된 1900년은 유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집안 대소사 또는 개인적인 용무로 상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편지 본문 가운데, “세상이 험악하니 사람들과 교유할 때는 말을 신중하게 하고, 반드시 해 내겠다는 각오로 덤비지 말고 시세와 변화에 따라 여의치 않으면 돌아오라.” 라고 언급한다거나, “유제(侑祭, 賜祭)는 힘닿는 대로 주선한다 해도 향론은 모두 온당케 여기지 않는다.” 라는 등의 언급을 통해 집안 조상과 관련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상경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