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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유물

1921년 김창숙 간찰

작성일 2024.10.18 조회 10 작성자 학예연구부
유물명
1921년 김창숙 간찰
유형
서간류
언어
한문
재원
64.0×27.0
시대
일제강점
생산자 및 생산처
김창숙
생산년도
1921

본문

1921년 1월 14일,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이 중국 상하이[上海]에 유학 왔다가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화영(華永)의 병원비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동산(東山) 류인식(柳寅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상대가 부친상을 당한지 이미 1년이나 지났으니 효자의 마음에 애통함이 끝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슬픔을 잘 절제하여 버티기를 당부하였다. 본론으로, 상대의 친족인 화영 군이 지난 해 여름에 만주 봉원(奉垣)의 집에서부터 상하이로 유학을 왔다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래서 상해공립의원(上海公立醫院)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비용만 쌓여갈 뿐 소생할 방법이 없어 다시 서양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치료비가 쌓여 약 400원에 이르렀는데 갚을 길이 없어서 독촉 받다가 쫓겨날 상황이고, 화영이 예전 알고 지내던 학우가 어렵사리 100원을 마련하여 보태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화영의 본가인 봉원에서도 흉년이 들어 병치레하기 어렵다는 등의 사정을 알리며, 상대에게 치료비를 넉넉히 보내 달리고 요청하고 있다. 추록에는 송금 장소로 ‘상해 남시(南市) 상해공립의원 3루(樓) 32호실’을 쓰고, 화영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 편지가 발급된 1921년 초반은 김창숙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 할 때이다. 화영은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단주(旦洲) 류림(柳林, 1898~1961)의 본명이다. 류림과 류인식은 모두 삼산문중(三山門中)의 후예들로, 류림이 류인식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집안 숙부뻘 된다.
류림은 1921년 당시 북경에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의 「천고(天鼓)」 발간을 도왔고, 상해에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류림이 당시에 실제로 불치병에 걸렸는지는 의심 할만하다. 또한 류인식이 부친상을 당한 시기는 이로부터 약 5년 뒤인 1924년이어서 편지 서두에 언급한 부친상에 대한 위로는 시기상 맞지 않다. 따라서 이 편지의 발급 목적이 일제의 검열과 감시를 피하여 임시정부 활동자금을 부쳐달라는 요구가 아닌가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