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신문]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어가는 시대

작성자 기획관리부 작성일 2008.05.02 18:56 조회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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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

3·1운동이 절정에 이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그 이름에서 두 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하나는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다. ‘민국’은 임시정부가 우리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수립된 민주공화정부라는 의미에서 혁명적인 결실임을 드러냈다. 다른 하나는 독립을 이룰 때까지 ‘임시’로 구성하는 정부라는 뜻으로, 독립 후 ‘정식’대한민국을 수립하는 데 다음 목표를 둔다는 뜻을 담았다.

임시정부는 상해시대(1919∼1932), 이동시대(1932∼1938), 중경시대(1939∼1945)를 거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갔다. 국내 행정력 장악 노력, 직할 군사조직과 만주 독립군 통할 노력, 중국·미국·소련 등 열강과 벌인 외교활동,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비롯한 의열투쟁, 군사력 양성과 광복군 창설, 연합군과의 연대와 국내 진입 시도, 좌우 합작과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등이 그 핵심이다.

임시정부는 시기에 따라 왕성하게 독립운동계를 대표하고 이끌었지만, 반대로 허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정부 수립 직후와 광복 직전에는 독립운동 세력의 대표적 위상을 가졌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정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쇠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끝내 어려운 고비를 하나씩 극복하면서 무려 26년 반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독립운동의 중심축 역할을 맡아냈다.

한국사 관점에서 보자면, 임시정부는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라는 사실 외에 이념적 분화를 극복하여 좌우 통합정부를 이룩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임시정부가 독립운동계의 대통합을 일궈낸 일은 민족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또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임시정부는 두 가지 의의를 갖는다. 하나는 정부조직으로 26년이 넘도록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세계 식민지해방운동사에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사례를 남겼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열강 세력들이 카이로 선언(1943. 12. 1)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초유의 사건을 가져 온 점이다. 인도의 지도자 네루(P.J.Neru)가 아시아 식민지 국가 가운데 열강에 독립을 보장받은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며 부러워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2. 배타적 정통성 시비와 한계

임시정부가 해방 이후 겪은 풍랑은 항일투쟁기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다.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임시정부 세력은 설 곳을 잃었고, 남북한 집권세력 모두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남한에서는 겉으로만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따돌림 받거나 폄하되는 일이 허다했고, 또 임시정부를 악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려는 세력마저 나오기도 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북한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철저하게 짓밟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임시정부는 수립 자체에서 이미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3·1운동에서 표출된 민족의 열망인 민족국가·국민주권국가 수립을 임시정부가 달성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당시 선언으로서 나타난 여러 정부 가운데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던 연해주 한국민의회(3. 17)·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4. 13)·국내 한성정부(4. 23)를 1919년 9월에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를 존재가치라 일컫는다.

그렇다고 해서 임시정부만이 정통성을 독점할 수는 없다. 정통성이란 바로 민족의 양심과 같은 길을 걸은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항일투쟁기의 민족적 양심은 무엇보다 일제 강점을 무너뜨려 민족 독립을 일구어내는 데 있었다. 이러한 길 위에 서 있었다면, 활동지역과 방법에 관계없이 투쟁한 만큼 정통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나라 안팎 어디에서든지 민족의 양심과 같은 길을 걸었던 인물과 집단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임시정부가 민족적 정통성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임시정부만이 그것을 독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에 정통성은 항일투쟁에 몸 바친 인물과 세력이 가지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활동과 성과를 올린 정도에 따라 그 몫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를 역할가치라 부른다.

지난 날 냉전 구도에서 남북한 집권세력은 모두 배타적인 정통성·법통성 주장을 펼쳤다. 남한에서는 임시정부를 독립운동의 최고봉으로 평가하면서 사회주의계열의 활동을 아예 무시했고, 이에 반해 북한은 임시정부를 "인민의 피를 빨아 외교청원 놀음이나 펼친 부르조아 정권"이라고 매도하면서 김일성 세력에게만 정통성을 부여하였다. 어느 쪽도 정확한 주장은 아니다. 자신의 체제를 우위에 두고 배타적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에서 나온 결과요. 체제 대결 구도에서 나온 현상이었다.

3. 새롭게 이어가는 정통성

정통성 논쟁도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맞추어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항일투쟁기의 정통성을 독립운동 세력이 가지듯이, 새로운 시대의 정통성도 역사적 과제 해결에 나선 세력에게 주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한다. 자유와 평등, 어느 하나로만 쏠려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로 분화되고 냉전이 고착되던 현상은 점차 극복되어 왔다. 이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흔히 통일지향성만을 내걸고 정통성시비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기준이 빠졌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통일지향성과 더불어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기준점은 독재와 독점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여부이다. 100년 뒤에 지금의 남북한을 두고 정통성을 논한다면, 어느 쪽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만들었는지 살펴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임시정부가 시대적인 과제 해결에 앞장서 정통성을 가지듯이, 이제는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에 무게를 두고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어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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