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학교 터에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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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독립기념관 건립 공사 한창
전국 최다 독립운동가 배출.. 포상자만 283명
(안동=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8.15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옛 천전초등학교 자리에서는 안동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하 1층, 지상 1층의 단출한 모습으로 지어지고 있는 안동독립기념관은 내년 8월 15일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 숫자만 현재까지 283명으로 기초단체 가운데서는 단연 전국 최다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임을 고려하면 다소 초라하다고 할 수 있는 규모지만 그 옛날 만주 벌판에서 말달리던 애국지사들을 기리는 마음만큼은 웅대하기 이를 데 없다.
안동지역은 기초단체는 물론이고 서울(221명), 대구(122명) 등 광역단체 상당수와 비교해서도 월등하게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성지(聖地)다.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숫자가 많은 것 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불이 최초로 타오른 곳이기도 하다.
1894년 갑오년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는 일이 일어나자 2천여 명의 갑오의병이 봉기한 것을 시작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에 반발해 을미의병이 봉기하는 등 안동지역은 한국독립운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동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친 것은 1910년 나라를 빼앗기면서부터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 무렵에만 안동에 사는 애국지사 10여 명이 나라 잃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함께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망명의 길을 선택한 애국지사들도 많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해 유인식, 김동삼, 권기일 등 한국독립운동사의 빛나는 별들이 전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기지 건설과 교육 활동에 전념했다.
이들 모두 명문가의 후손들로 일제 아래에서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선비 된 도리로써 결코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 가운데 추산(秋山) 권기일(權奇鎰ㆍ1886∼1920) 선생은 결국 1920년 8월 만주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 발견돼 무참히 살해되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조선공산당 제1차 책임비서를 지낸 김재봉과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를 지낸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 고위급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는 등 안동지역은 무장 투쟁, 문화 투쟁, 사회주의, 무정부 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독립운동의 전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안동지역 독립운동사의 상징이 될 안동독립기념관이 들어서는 협동학교는 을사조약 체결 2년 뒤인 1907년 젊은 유림이었던 유인식, 김동삼 등이 실력 양성을 위한 신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설립한 곳으로 1910년 나라를 빼앗긴 뒤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역사의 뒤안길을 사라졌다.
안동시는 앞으로 이 곳을 도산서원, 국학진흥원과 연계한 교육의 장으로 삼을 계획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나라가 평안할 때는 정신 문화의 중심에 있었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분연히 떨쳐 일어난 기개를 보여준 곳이 안동"이라며 "안동독립기념관은 국난 극복에 몸 바친 조상들의 숭고한 삶을 영원히 후손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yongm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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