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가 남긴 뿔도장

작성자 기획관리부 작성일 2007.08.16 17:21 조회 2,039

본문

2007-08-13 10:04 송고
택시 모는 손자 권대용씨 안동독립기념관 기증

(안동=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아주 소중히 간직하라고 하셨던 건데 이제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제 치하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인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산(秋山) 권기일(權奇鎰ㆍ1886∼1920) 선생의 손자가 최근 조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도장을 안동독립기념관에 맡겨 왔다.

   손자인 권대용(60.개인택시.안동시 송현동)씨가 맡긴 도장은 추산 선생의 이름이 한자로 또렷이 새겨진 물소뿔 도장으로 추산 선생이 1912년 만주로 떠나기 직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동에서 천석꾼 부자였던 추산 선생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 1년 남짓 뒤인 1912년 초 26살 나이에 전 재산을 처분해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가 경학사와 부민단 등 독립운동을 위한 교육 활동에 힘썼다.

   이번에 기증된 도장은 당시 추산 선생이 독립운동자금 관리를 맡으면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추산 선생이 1920년 8월 15일(음력 7월 2일) 34살의 젊은 나이에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의 총칼에 무참히 살해되면서 도장은 주인을 잃었고 그 뒤 지금까지 87년 동안 가족들이 소중히 간직해 왔다.

   여느 독립운동가 후손과 마찬가지로 추산 선생의 후손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광복 후 안동으로 돌아 온 추산 선생의 아들(권형순. 98년 작고)은 손수레를 끌며 간장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손자인 대용씨도 중학교 1학년을 휴학하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해 환갑을 맞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던 꿈이 물거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할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오히려 자신의 휴대전화 중간번호를,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829'번으로 사용할 만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그러나 오는 14일 할아버지 제삿날(음력)이 돌아오지만 시신조차 제대로 거두지 못한 후손으로서 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작년 이 맘때 만주 신흥무관학교 터를 찾아갔을 때 비가 오는 황량한 수수밭에서 어디에 모셔졌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께 술잔을 올리고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권씨는 "이번 제사 때는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도장을 후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좋은 곳에 맡겼다고 말씀 올릴 생각"이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yongmin@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담당부서 및 담당자:기획관리부 오준민/이메일:mcp21c@naver.com/연락처:054-823-1555(FAX.054-823-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