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산실 안동을, 민족교육 운동의 장으로

작성자 기획관리부 작성일 2007.08.16 16:38 조회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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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고장인 안동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발상지자 메카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이지요. 이 유서 깊은 곳에 독립운동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에요.”

내년에 문을 여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초대관장으로 선임된 김희곤(52·사진) 안동대 사학과 교수. 그는 “안동이 이를 계기로 독립· 민족운동 교육 장으로 거듭 태어나게 돼 기쁘다”며 기념관의 설립 당위성을 설명했다.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 마을) 옛 협동학교 터에 세워지는 이 기념관은 현재 약 70%의 공정을 보이고 있으며, 내년 8·15 광복절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곳은 특히 영남 신교육의 중심지인 협동학교의 자리일 뿐 아니라 유림 중에서도 혁신파에 속하는 의성 김씨 문중 마을로 나라를 잃자 주민 150여 명이 만주로 집단이주하기도 했다. 이 마을 출신으로 김규식,김흥락, 김대락, 김동삼, 이삼용, 유인식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안동 양반 하면 보수적이고 너무 원칙에 집착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국가가 일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들이 보여준 항일운동은 가진 자와 배운 자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오블리주)를 대변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신과 집단의 이익이라면 사회 정의는 물론 그 알량한 자존심마저 내팽개치는 우리 사회 지도층들과는 비교가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상해 임시정부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그가 안동 양반들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이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은 17년 전 안동대 사학과에 부임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시작은 동학농민운동과 함께 1894년 갑오의병부터예요. 51년간 이어진 독립운동사에서 현재까지 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은 9000명에 달하는데 이 중에 안동출신이 270명이나 됐습니다. 전국 시·군 단위보다 독립운동 에너지가 10배나 높았지요. 왜 이럴까 파고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안동 독립운동의 밑바탕에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퇴계 학맥과 통혼이 주요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고리로 안동지역이 민족문제에서도 하나로 대처했다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경기 북부권의 독립운동 연구뿐 아니라 의병들의 일기, 이육사 평전도 썼으며 백범 김구전집 발간에도 동참했다. 김교수는 또 ‘독립운동으로 쓰러진 한 명가의 슬픈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광복 조국에서조차 버림받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고단한 삶을 그려 왜곡된 우리 현대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이 기념관이 어린이에게서 공무원까지 유교정신 체험과 교육의 장이 되도록 전시관 옆에다 연수관을 마련해 하루에 40∼80명 정도 수용할 수 있게 했다는 그는 독립과 보훈으로 특화된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이밖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자체 발굴, 선정할 예정이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이 기념관의 주인이 돼 운영할 수 있게 토대를 조성할 계획이다.

운영경비 절감을 위해 기념관 규모도 최대한 작게 했으며, 내 앞 마을의 경관을 해치지 않게 건물도 1층 단층으로 꾸며진다.

안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이며 독립기념관연구소장이기도 한 그는 “해방 전후 좌우 이념 대립으로 나라가 분열됐을 때도 이 지역은 유교로서 이들을 통합, 충돌이 없었다”며 “보혁 갈등으로 혼란을 빚는 요즘 화합과 화해의 길을 이 지역 독립운동사가 보여준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성룡 기자 sych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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