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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유물

이준형 유서 인화사진

작성일 2024.11.03 조회 76 작성자 학예연구부
유물명
이준형 유서 인화사진
유형
사진
재원
13.1×18.1
시대
시대미상

본문

1942년 9월 2일, 안동군 월곡면 도곡동(道谷洞, 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 돗질마을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한 동구(東邱) 이준형(李濬衡, 1875~1942)의 유서 원본을 촬영하여 인화한 사진이다. 이는 그가 임종하기 직전에 아들 대용(大用, 李炳華의 初名)에게 남긴 문서로, 원본 지면에는 자결 당시 혈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서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목은 “兒子大用見之[아들 대용은 보아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처음, 병들어 산 30년의 세월동안 늙어갈수록 병세만 더 깊어지니, 하루를 살면 하루의 부끄러움만 더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의리가 있으니 상대에게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어서 집안일을 처리 해 나가는 일, 면례에 관한 일, 술을 절제하고 증(曾)이 어미[曾母, 이병화의 아내 허은(許銀)을 가리킴]에게 잘 해주라는 당부, 장례에 관한 지시사항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준형은 본관은 고성, 자는 문극(文極), 호는 동구이며,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아들이다. 안동 법흥동 임청각(臨淸閣) 출신이다. 1909년 대한협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였고, 1911년 부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서로군정서, 정의부, 한족노동당 등을 설립 · 참여하였다. 1932년 부친 순국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당시 일제로부터 압박을 받던 중 1942년에 유언을 남기고 자결로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저서로 『동구유고(東邱遺稿)』가 있다.
원본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자료로, 『고문서집성 49 -안동 법흥 고성이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p.419에 ‘간찰47번 「이준형(李濬衡) 간찰(簡札)」’로 분류 · 공개 된 자료이다. 또한 『동구유고(東邱遺稿)』에도 실려 있다.